Have you noticed Korean flags hung out in the streets lately? This is because an important date for all Korean is coming up soon. This day is the anniversary of the March 1st Movement.
It began in 1919,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and lasted all the way through April. It was one of the first public statements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which first started in Seoul, then spreading to other cities and quickly becoming an Anti-Japanese movement.
Despite the movement being suppressed, this historical day was elevated to national holiday on May 24th, 1949.
최근에 거리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왜냐하면 곧 모든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날짜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3.1운동 기념일이에요.
그것은 한국의 일본 점령 기간인 1919년에 시작되어 4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서울에서 처음 시작되어 다른 도시로 퍼져나가 항일운동이 된 한국 독립 운동의 첫 번째 공식 성명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억제되었지만, 이 역사적인 날은 1949년 5월 24일에 국경일로 격상되었습니다.
Inspired by the "Fourteen Points", in which the idea that every nation was entitled to their national determination was first proclaimed, Korean students decided to take the matter of their national identity into their own hands. In March 1919,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written by Korean historian and writer Choi Nam-seon and published in Seoul. The declaration was signed by 33 South Korean patriots who formed the core of the Samil Movement, and sent to the Japanese Governor-General of Korea, Hasegawa Yoshimichi, also was read out loud at Tapgol Park in Seoul.
At first, it was considered a peaceful demonstration but, after the Japanese reaction, it turned to a wave of protests across Korea. An estimated 2 million Koreans took part in the rallies, demonstrating their desire for autonomy as a nation. The marches were halted by Japanese police, at whose hands about 7,000 people died and plenty more were arrested.
모든 국가가 그들의 국가적인 결단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선언된 "14가지 사항"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학생들은 그들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그들의 손에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1919년 3월,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최남선이 집필하여 서울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시국선언문은 삼일운동의 핵심을 이룬 33명의 한국 애국지사들이 서명했고,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부에도 보낸 시국선언문은 서울 탑골공원에서도 큰 소리로 낭독됐습니다.
처음에는 평화시위로 여겨졌지만, 일본의 반발 이후, 한국 전역의 시위 물결로 바뀌었습니다. 약 2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집회에 참가하여 국가로서의 자치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었습니다. 행진은 일본 경찰에 의해 중단되었고, 약 7,000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습니다
The symbolic image for March 1st Movement is that of Ryu Gwan-sun, who was only 17 when she participated in the demonstration. She was arrested, but even while in prison she never gave up her beliefs and trust in the fight.
The March 1st Movement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Korean national identity statement. It also made the Japanese change their stance and realize the inefficiency of their power management, as they understood this as a cultural reset.
Nowadays, the 1st of March is a highly celebrated day, as it symbolizes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and those who fought for it. Even after so many years, you can feel that the patriotic is still very much alive in modern Korean society.
3운동의 상징적 이미지는 시위에 참여했을 당시 17세에 불과했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에요. 그녀는 체포되었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싸움에 대한 신념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국민 정체성 담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일본인들이 이것을 문화적인 재설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바꾸고 그들의 권력 관리의 비효율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오늘날, 3월 1일은 독립의 회복과 그것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상징하기 때문에 매우 기념되는 날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애국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Photo Credit and Written by Alina
English Edit: Pipa
Korean Edit: Arvinbilig
Photo Edit: Alina
Uploaded: Ind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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